그리운 아버지... > Letter

본문 바로가기
CS1544-4471

Letter

A shelter where loved ones find rest and fond memories live on, Cheonan Memorial Park.

To.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1,287회 20-09-16 18:13

본문

# 아버지가 꽃밭에 누워 계시다 ☆


지난 겨울 초입 11월 15일에 운명하신 아버지.
우리는 이제 서서히 아버지와 작별하고 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했으며,
우리는 당신과 더불어 한 번이라도 더 밥을 먹고

말씀을 나누지 못한 것을 서러워하고 있다.

선산은 공기 좋고 바람 많고 구름 노니는
`천안 공원묘원` 의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당신 홀로 한가롭게 거니시며 먼 데 산 너머를 하릴없이 오가고 계시리라
마음으로 바라본다.

워낙 강건하고 민첩한 성품이라 한가로움을
싫어하셨다. 어찌보면 매사 분주한 듯
한 시도 ` 망중한` 인 때가 없으셨다.
화초를 당신의 사랑하는 손주들
머리를 쓰다듬듯 돌보고, 시간만 나면 손수 망치질을 해서 소품을 만드시던 모습만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소일거리가 오히려 당신에게는 휴식이셨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급한 성격과 깔끔한 성깔에 다가서는
이들이 드물었으리라.
우리가 아버지에게 가지는 추억의 풍경은
그래서 가난하고 미약한다.
내 기억 속의 돔화책을 이리저리 펼쳐보기
전에는 특히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우리는 오는 설을 앞두고 산소에 간다.
나는 벌써 죽음 후의 일을 아는 나이가 돼서
산소에 가야 아버지를 만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우리가 천안에 가는 것은,

가려고 준비하는 동안의 마음으로 가는 성묘다.
아버지의 차가운 돌무덤을 어루만지며
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걸 가슴 아파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며
아버지 누우신 자리에서 나란히 앉아 너른 산자락을 내다보며

술잔을 올리는 예를 표하는 일이다.
그 시간이나마 함께 가는 식구가 한마음으로
저 세상에 계신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이고
우리 역시 본향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되리라.

우리 아버지는 감성이 풍부하셨다.
극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셨다.
시간이 좀더 허락되었다면 멋진 드라마를
한 편이라도 쓰셨을 것이다.
이젠 우리가 읽어 볼 수 없지만 하늘에서
즐거이 좋아 하시던 작품을 쓰고 계시리라.

우리 아버지는 낭만적이셨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밴드의 지휘자를 하셨고
음악과 노래에 일가견이 있으셔서 항상
라디오나 전축을  틀어놓으셨다.

내가 자라며 기억에 남는 것은 아버지를 따라
밤마다 `서부영화` 를 티비로 본 일이다.
70년대 초에는 총잡이와 사막과 추장이 등장하는 복잡하지 않고

흥겨운 서부영화가 유행이었다. 늦은 밤에 상영을 했지만
한 방에서 자던 시절이라 나는 아버지와 함께
자정이 넘도록 그 멋진 서부영화에 푹 빠졌다.

이런저런 추억이 아이를 자라게 한다.
마음도 키우고 심성도 깊어지며 몸도 자란다.
내가 통이 크고 대담한 것도 서부영화의 그
황량한 사막과 총잡이 사나이들의 의리
또 추잠의 정의가 준 메시지가 남아 내
잠재력에 서려있는 법하다.
그리운 그때다.

아버지가 당신의 죽음을 알고 싶어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전해들었다.
어이없이 발병하셨고 말기암이란 선고와
15번의 항암치료로 죽음의 공포와 다가오는 두려움을 감내하시기 얼마나 어려우셨을까
나처럼 우울증을 겪어 본 사람은 사는 것 자체가 죽음이란 걸 알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지만 부지불식간에 쳐들어 온 손님을
맞아들이기 쉽지 않으셨으리라 짐작된다.
후회스러운 부분이다.
우린 좀 솔직했어야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셨다해도 심중을 나누었어야 했다.
눈으로는 보면서 아닌 척 한 게 안타깝다.
그래서 난 이런 경우엔 미국의 실용주의가 좋다.
우리처럼 인정에 끌려서 정작 중요한 시간을 잃기도 하니 말이다.

목요일 눈을 감으셨고 그 전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수원집에 머무르며 있었다.
안방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 잠드신 채 계신
아버지께 다가가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나는 아버지께 어디가 아프시냐고 여쭈었고 아무데도 아프시지 않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잘 드시면 기력을 찾으실 수 있다고
하며 수진이와 등을 바쳐 일으켜드렸다.
아버지는 거의 드신 게 없으셔서 힘이 없으셨지만 정신을 놓지 않으셨기에,
우리의 부추김을 받자 침대 끝에 다리를
내리며 바로 앉으셨다. 당신 힘으로 고쳐가며,
등을 가볍게 두드려드렸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계셨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시던 주의 월요일에도
나는 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초점을 잃으셨지만 목소리를 듣고 눈만 뜨셨다.
돌아올 때 인사를 하니 손에 힘을 주셨다.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
그리고 다시는 눈을 뜨지 않으신 채
목요일 오전 8시반에 운명하셨다.
이른 아침에 전화를 받고 서둘러 전철을 탔지만
내가 가는 동안 돌아가셨고 영안실로 가야했다.
분명히 그리 허망하게 돌아가실 위인이 아니다.
내가 아버지를 닮아 알지만 당신은 때가 왔음을 아시고 포기하신 것 같다.
그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생명의 주인인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는
생명이라 믿으면서도 못내 아쉽다.

난 정말 이대로 가시는 것일까 했고 벌써
죽음을 감지한 가족은 장례준비에 들어갔다.
이젠 다 지나갔다.
술렁이던 영안실의 2박 3일 풍경도,
입관 예절과 장례미사와 출관, 장지, 삼우제,
49제를 지내며 탈상까지 일사천리로 해치웠다.

한 사람의 생애가 접히는 것이 이렇게
순조로운 것임을 그때  실감했다.

내내 가슴 아팠던 것은 연화장에서의
` 화장 중` 이란 붉은 전광판이었다.
아버지가 1500도의 불에서 다시금 돌아가고 계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김명호 암브로시오와 어느 젊은이의 화장을 지켜본 이후

나는 화잠장에 가는 것을 피하고 있고, 나 역시 화장은 거부한다.
주검을 내다버릴망정 ` 화장 된다` 는 사실은
알고 싶지 않다고 아들에게 당부했다.
아들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을 해준다.

아버지는 이 겨울을 나그네 되어,
눈발 속에 길을 걸어 가고 계시리라.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


2013, 2, 3 눈은 내려 쌓이고 있다.  


From. 백진기


Cheonan Memorial Park
Privacy Policy Terms of Service Email Collection Refusal
Organization. LOEM FoundationChairperson: Kang Yeon-seung
Business Registration No. 312-82-01494
Address. Gwangdeok-ro 383, Gwangdeok-myeon, Cheonan-si, Chungcheongnam-do
Tel. 1544-4471Fax. 041-567-0535
Copyright (c) LOEM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Kakao Chat